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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중한 글들/가슴을 체우는 글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유안진 -

by 블루 돌핀 2008. 1. 27.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유안진 -

 

  나는 한가로운 한낮에 유치원에서 올망졸망 돌아오는 아이들과 버스 안에서 얘기 업은 아줌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키 작은 중학생 소년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조그만 키로 커다란 신문 뭉치를 들고 뛰어가는 고등학생의 집념에 찬 눈동자를 좋아한다. 물 말아서 점심을 먹고 큰 대자로 누웠을 때 무심히 지나는 산들바람도 난 좋아한다. 피곤한 저녁. 안내양에게 껌 반쪽을 주며 ?수고하세요?하고 내리는 어여쁜 하얀 칼라의 여학생도 좋아하고 며칠밤 며칠날을 흐리다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밤하늘의 별들을 좋아한다.

  포장 집에서 마신 한잔의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할아버지의 음정 박자 안 맞는 타령도 좋아한다. 여름 한낮, 모시 적삼에 조금 찢어진 부채를 들어 점잖게 흔드시는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깊고 깊은 우물물에 담가 두었던 콩국에 칼국수를 말아 주시는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을 더욱 좋아한다. 그리고 풋고추를 아주 조금 베어 물고는 맵다고 펄쩍 펄쩍 뛰는 내 동생도 정말 사랑스럽게 좋아한다. 내가 아파 누웠을 때 거리낌없이 빈손으로 찾아주는 친구들을 눈물겹게 좋아한다. 언제나 지나칠 때면 웃음으로 대해주는 꽃집의 이름 모를 아가씨도 좋고 화장품 가게 유리창에 붙인 예쁜 광고 사진도 좋아한다.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음악에 잠시라도 발을 멈출 줄 아는 젊은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고 아줌마의 파, 마늘, 배추 등이 든 시장 비구니를 빼앗듯이 들고 걸어가는 옆집 총각의 마음씨도 좋아한다.

  성경을 옆에 끼고 다정스레 걸어가는 오누이들의 뒷모습 보기를 좋아한다. 조그만 아름다움에서 커다란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소박한 사람들의 마음을 난 정말 좋아한다.